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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음반소개팅

이제 만날 수 있을까 : Smashing Pumpkins [Machina]

by 보빈씨 2018. 6. 26.




이제 만날 수 있을까



경은이는 내 1학년 때 친구다.

검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고등학생 같은 옷차림, 순박한 얼굴에는 환하고 담백한 웃음이 있는 내 대학 첫 친구였다. 10명 정도 무리지어 놀던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특히 경은이랑 나랑은 짝으로 앉아서 같이 웃고 떠들고 공부하고 놀았다. 

수업듣고, 매점가고, 밥먹으러 가고, 도서관 가고, 학교 밑 술집가고~ 평범한 대학생 애들이었다.

한 번은 여름에 가야밀면을 먹으러 갔는데, 정말 맛있지? 하면서 ‘입에 달라붙는 맛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 표현을 처음 들어본 나는 “입에 달라붙는다구?” 하면서 같이 웃었다. 


경은이는 동생도 있었다. 남자 동생이었는데, 경은이처럼 애가 순진하고 착한 얼굴이었다. 동생은 우리 친구들도 정말 잘 따르고, 자기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우리랑 같이 놀았다. 하여튼 보기 드물게 착한 남매였다. 


어머니도 좋으셨다. 경은이 집에 놀러가면 어머니가 “왔나~” 하면서 엄청 반기며 잘해주셨다. 어머니는 독립적이고 화끈한 느낌이 있었다. 조금 섹시하시다고나 할까… 젊은 느낌이 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랑 경은이랑 대화하고 노는 게 참 좋았다. 


그렇게 1학년이 지나갔다. 

겨울방학이 되었으니 우리는 대부분 각자 집에서 놀거나 약속을 잡아서 만났다. 

2학년 올라가는 그 겨울방학, 그 어느 일요일 오전에 나는 가족 다같이 집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냥 휴대폰을 놔둔 작은방으로 건너왔고, 무심코 휴대폰을 확인한 순간 다른 대학 친구의 부재중이 10여 통이나 와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 왜 전화 안 받아! 경은이가 죽었다고!!!!!” 







점퍼를 들고 뛰어나오던 나

정신차려 고함을 지르며 내 지갑을 들고 뛰어나오는 작은 언니

엘레베이터

건널목

버스 안에서의 나

빈소가 있는 병원

건물 밖 먼저 와 있던 친구들

어머니

동생 

사고를 낸 경은이 친구들

법당

빈소

빈소








...많은 음악이 필요했다. 아주 많이 필요했다.

일주일, 한달, 6개월, 1년…2년…3년…..


울어 터진 내 눈동자가, 소리지른 내 목청이, 쏟아내는 내 손이, 흔들리는 다리가 Stand inside your love를 따라 흘렀다. 


어머니와는 저번 달에도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가끔 “우리 경은이 가시나 생각나면 너 생각나서…” 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는 가끔 통화만 나눌 뿐 따로 뵙지 않았고, 경은이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경은이와 똑같이 생긴 여자분과 결혼한 동생, 경은이 동생과는 1~2차례 외 통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경은이를 만날 수 있을까. 

슬프지 않고. 옛날처럼 웃고 떠들면서.


(2018.06.07)




Smashing Pumpkins 5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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