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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만날 수 있을까 : Smashing Pumpkins [Machina] 이제 만날 수 있을까 경은이는 내 1학년 때 친구다. 검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고등학생 같은 옷차림, 순박한 얼굴에는 환하고 담백한 웃음이 있는 내 대학 첫 친구였다. 10명 정도 무리지어 놀던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특히 경은이랑 나랑은 짝으로 앉아서 같이 웃고 떠들고 공부하고 놀았다. 수업듣고, 매점가고, 밥먹으러 가고, 도서관 가고, 학교 밑 술집가고~ 평범한 대학생 애들이었다. 한 번은 여름에 가야밀면을 먹으러 갔는데, 정말 맛있지? 하면서 ‘입에 달라붙는 맛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 표현을 처음 들어본 나는 “입에 달라붙는다구?” 하면서 같이 웃었다. 경은이는 동생도 있었다. 남자 동생이었는데, 경은이처럼 애가 순진하고 착한 얼굴이었다. 동생은 우리 친구들도 정말 잘 따르고, 자기 친구까지 데.. 2018. 6. 26.
즐거움 : 패닉 [1집 패닉] 즐거움 오늘도 내 친구는 바쁘다. 낮에는 일, 밤에는 글을 쓰는 주경야필(!)의 삶에 여러 해를 들여 공들이고 있다. 친구는 고된 스케줄을 비상한 성실함으로 지켜낸다. 그의 생활을 듣고 있노라면 김훈 작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이 절로 떠오른다. 나 같은 팔자 좋은 백수는 이 일개미 친구가 ‘휴식과도 같은 밤 한 자락’을 기꺼이 잘라내어 고심 끝에 골라준 음악을 들으며 베짱이 짓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풍류를 아는 베짱이 행세도 음악을 공부하면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지랭이는 삼 년을 못 채운 서당개처럼 지식이 얄팍하다. ‘우리 노래 전시회’ 같은 전설의 음악가로 무장한 옴니버스 앨범을 접할 때면 가수의 이름은 알지만, 한 분 한 분의 업적은 잘 모르는 것을 자주 확인한다. 세대 차.. 2018. 6. 21.
이 밤 : Neil Young [A Letter Home] 이 밤 매달리던 일이 끝났다. 과제 하나를 해결한 밤을 맞이하자. 이중 창을 꼭 닫아 달이 움직이는 소리도 막자. 아까 보던 책과 교제들은 잠시 치워놓자. 마음씨 고운 친구가 건넨 모과차의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코끝으로 느끼며 찾는 단 하나의 영혼. 음악, 그거면 된다. 나를 잊었냐며 예쁘게도 외치는 언니네 이발관도 좋고, 추억의 향기로 취하기 전에 술잔을 들라는 비트겐슈타인도 좋다. 설레고 싱그럽다면 비틀즈, 밤의 기운을 이길 수 없어 야릇해진다면 끈적한 비비킹에 매달리면 된다. 기분이 우울하다면 라디오헤드를, 더욱 깊이 우울해지고 싶다면 뮤가 적격이고, 반대로 그 기분을 떨쳐버리고 싶을 때는 마리아 칼라스가 좋다. 그리고 만일 비가 오고 있었다면 단연 포티쉐드나 메시브 어택을 선택했겠지. 하지만 나.. 2018. 6. 18.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 야광 토끼 [Seoulight]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항상 문제는 그 놈의 콘텐츠다. 백수를 자처한 나에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질문을 한다. “그래서 이제 뭐 할건데?” 나도 그게 궁금해서 고민 좀 해보려고 회사를 그만 뒀다니깐. 프로그램 만들 때도 그랬다. 그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게 중요한가? 계도적이고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게 중요한가? 난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거냐,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당최 하고 싶은 게 뭔가? 임유진이라는 음악가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검정 치마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다 “너도 니 음악 한 번 해보지?”라는 조휴일 군의 권유로 야광 토끼라는 밴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햐, 권유 한 방에 자기 앨범이라니! 심지어 음악도 좋다! 난 이런 사람이 부럽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신호.. 2018. 6. 14.
그게 다 외로워서래 : 김목인 [한 다발의 시선] 그게 다 외로워서래 애인이 있어도 외로울 친구들의 대화 -응, 여보세요 (도로 차 소리)-응, 나야-어, 그래~ -뭐해?-응, 술 한잔 하고 집에 가는 길~-또 술 마신 거야? 오늘도 춤 췄겠네~ 하하-야야, 남자끼리 그냥 술 한잔 한거라니까~ 훗훗 넌 뭐하냐?-그냥 요 앞에 라면 사러 나왔어. -야 밤에 웬 라면? 이 비 오는데?-응 그러게. 하하-야, 밤에 살쪄 무슨 라면이야.-아이 뭐 그냥 출출하고 그래서~-에이 집에 과일 같은 거 없어? 있는 과자 같은 거 있으면 조금만 먹지-그러게 말이다- 그냥 왠지 이렇게라도 해야 좀 기분이 풀릴 거 같아서~-왜? 무슨 일 있어? -그러게 (휴) 모르겠다. 그냥 허한 거 같아 (웃음)-야~ 너 외로워? (비웃음) 남친 요새 못해주냐?-아 됐다 그래. 남친이랑 .. 2018. 6. 13.
한 판의 게임 : Queen [The Game] 한 판의 게임 VHS 비디오 테이프. 이상하게 비디오 테이프는 그냥 물건의 이름일 뿐인데도 왠지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야릇해진다. 그리고 왠지 빨간색에다 각양각색의 포즈를 취한 볼 빨간 소녀들의 스티커가 붙어 있어야 할 것 같다. ‘풍차’라든가 ‘욕정’, ‘~했네’ 등의 오글거리고 직접적인 제목과 함께. 우리집의 분위기는 굉장히 오픈되고 쿨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토요 명화’같은 영화에 남녀의 키스 장면이 나오면 그저 영화의 일부분으로 생각할 뿐 아무도 헛기침을 하거나 딴청을 부리지 않았고, 이나 같은 당시 엄청 파격적인 영화도 부모형제 온 식구 다같이 모여서 보곤 했다. 어느날 친구에게 VHS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빌렸다. 친구가 빌려준 테이프도 그런 센 .. 2018. 6. 12.
잘 알지도 못하면서 :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오랜 친구에 대해서 혹은 우리의 자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내 애인이고 내가 낳은 자식이라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초라해 마지않다.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는 애인의 기분을 이리저리 살피고, 아이 방에 몰래 들어가 일기장에 손대고 마는 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도 그랬다. 핑크 플로이드! 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위대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잘 몰랐다. 영국팀이던가, 미국팀이었던가? 멤버가 몇이더라? 웃긴 것은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보니 마치 비틀즈나 엘비스 프레슬리마냥 그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고작 .. 2018. 6. 11.
충격의 그 앨범 : 검정치마 [201] 충격의 그 앨범 “제대로 충격 먹은 몇 안 되는 국내 인디 앨벌들 중 한 장이 바로 검정치마 1집이었어요.”나의 음악 지기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랜 세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해온 대중음악 평론가로서 얼마 쥐고 있지도 않던 나의 쥐꼬리 만한 음악 지식마저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인물이다. 그에게 충격을 줄 정도면 진짜 대단한 음반일 것이다. 충격적이었다는 그 음반의 공격에 그럼 나는 멀쩡했냐고 물어봐 준다면 ‘1집보다 먼저 접했던 검정치마 2집에 나 역시 충격을 받아 정지했다’고 답하겠다. 2012년 회사 앞의 핫트랙스였다. 느긋하게 음반들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좋은 곡이 매장을 채웠다. 통기타 한 대, 건반, 베이스, 드럼, 약간의 소스만이 들어간 예쁜 음악. 멜로디가 아름답고 가사.. 2018. 6. 8.
나쁜 음악 좋은 음악 : Disturbed [The Sickness] 나쁜 음악 좋은 음악 ‘나쁜 음악’에 대한 견해를 읽었다. 비틀즈보다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쁜 음악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글쓴이의 사람의 생각은 아마 아름다운 비틀즈 같은 음악은 너무나 모범생처럼 착하기만 한 음악이라, 롤링 스톤즈 같은 반항 어린 거친 음악도 접하고 싶다는 것일 테다. 가끔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아는 콜라나 햄버거가 땡기는 것처럼 말이다. 롤링 스톤즈 팬들이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일까? 맞다며 고개 끄덕일 이야기일까? 나에게도 나쁜 음악은 있다. 그건 헤비 메탈, 그 중에서도 특히 데스 메탈 장르이다. 마치 음악 감상의 끝, 고추 중에서도 청양 고추, 산 중에서도 히말라야 정상 같은 이 대단하고 무시무시한(!) 보이는 데스 메탈! 이에 도전해 보고자 슬레이어, 디어사.. 2018. 6. 8.
바람이 불면 : 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 /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 애타게 사라져간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의 가사 일부분이다. 2004년 발표된 이 곡의 노래말과 황량한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텅 비게 했을 것이다. MBC 의 첫 방송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이소라를 보며 2005년 여름, 정처 없던 나날의 밤바람을 떠올렸다. 내 마음에도 허무한 바람이 불었다. 생각의 여름이라는 인디 가수를 접했있다. 어느 청년의 담백한 목소리로 주욱 읽어주는 잔잔한 통기타 감성. 2분의 시간이 넘을 새라 짧게 읊조리고 입을 닫아버린다. ‘비가 내리네 젖은 꽃들이 떨어지네.. 2018. 6. 7.
건강한 만남은 스러지지 않는다 : 전람회 ‘하늘 높이’ 전람회 '하늘 높이' 건강한 만남은 스러지지 않는다 당신에게 이성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요? 이성 친구와 얼마나 친밀감을 유지하시는지요? 저에게도 많은 이성 친구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까지… 특히 동갑만이 친구라는 공식을 깨 버린 이후로 저는 모든 연령의 사람들을 친구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성별을 떠나서 친구라는 것 자체가 서로 좋아하니까 친구가 되는 것이겠지만, 이성 친구의 경우에 있어서 이 이성이라는 부분이 마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한 극복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두의 역할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양한 이성을 친구로 삼고 친해지다 보니 좋은 이성 친구에는 ‘오래가는 이성 친구의 필수 사항’ 같.. 2018. 6. 5.
하지 않았다면 좋을 말들 : 브로콜리 너마저 '말' 하지 않았다면 좋을 말들 맑디 맑은 일산의 5월, 통유리를 통해 쏟아지듯 들어오는 햇살 바닥으로 가을 방학과 브로콜리 너마저가 퍼져나간다. ‘몇 잔의 커피값을 아껴 지구 반대편에 보내는…’, ‘너에게 할 수 없던 말을 하지 않았다면 좋을 말들…’ 이건 완전히 좋은 음악이다. 주변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래 추천 대상으로는 애인이 제일 적합하지. 꼭 들어보라며 그의 백팩에 이 CD 두 장을 넣어주었다. 데뷔 앨범을 낸 브로콜리 너마저는 점점 유명해져 2집도 내고 공연 스케줄도 많아지게 되었지만, 우리도 그에 비례해서 싸움이 잦아졌다. 결국 그렇게 정리되어버린 만남 이후 2년여. 어느 맑은 5월, 오늘처럼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기가 막혔다. 아, 나는 지금 브로콜리 너마저가 필요한.. 2018. 6. 4.
텅 비울 수 있기를 : 장필순 ‘그리고 그 가슴 텅 비울 수 있기를’ 텅 비울 수 있기를 오늘 저녁 문자 하나를 받았다. 문자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없음 – 정PD님 잘 계시는지요 민망하긴 하지만 새로운 둥지에서 실력 있는 스텝들과 시작했습니다 연락 한번 주시면 찾아뵐게요 더위에 건강하세요’ 아! 누구지. 이 분이 누구인지 이제 나는 모르겠다. 전화번호가 저장이 되어 있지 않다. 언뜻 보건대 나와 한 때 친분이 꽤 있었으나 최근에는 뜸했고 방송계 직군 중에서 연출 쪽일 것이며 이 PD분이 후배들을 데리고 프로덕션을 차려서 일감을 찾으러 다니는 중인 것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이 분은 내가 이제 방송을 하지 않는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건 작년 10월이다. 초등학교 친구와 광안리 해변을 걷다가 문득 가족과 친구, 내 터전을 두고 어디서 행복을 찾겠다고 .. 2018. 6. 3.
'갈기'의 변천사 : 전기뱀장어 '야간비행' '갈기'의 변천사 어렸을 때 우리집 전축으로는 3가지 매체를 재생할 수 있었다. LP, CD, Tape. 당시 CD가 플레이 되는 전축은 신식으로 쳐줬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우와, CD도 들어간다!”고 신기해하면서 부러워할 때 난 뒤에서 짐짓 으쓱해 하곤 했다. 어차피 마땅히 틀 CD가 없던 상황이므로 모든 음반은 Tape아니면 LP였는데, 이 LP는 한번 갈라치면 아주 조심히 집중해야 했다. 일단 지문이 묻으면 안되며 특히 판을 뒤집을 때 흠집이 나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비닐 케이스에 넣기 전에 자주 생기는 무시무시한 정전기를 잡기 위해 일단 클리너로 한 번 돌려 닦고 넣어야 한다. 당시 나를 묘사하자면 온 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원하여 LP를 갈고 뒤집어 보겠다는 방바닥에서 부들부들 집중.. 2018. 6. 1.
봄날의 기타를 좋아하나요 : Beatles ‘Here, There and Everywhere’ / Kansas ‘Dust in the Wind’ 봄날의 기타를 좋아하나요 누가 내게 어느 음악 장르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Rock, 그 중에서도 모던락이라고 하겠다. 나는 90년대에 온통 10대를 다 보내고 2000년대를 지나며 라디오 헤드와 오아시스, 뮤즈와 함께한 전형적인 모던락 키드이다. 모던락이 좋은 이유를 다시 물어온다면 나는 일단 멜로디가 아름답고 슬퍼서라고 답하겠다. 이 느낌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보컬의 음색이나 멜로디가 기여하지만 기타의 순위도 그 다음일 수가 없다. 울림통을 직접 통해서든 엠프를 통해서든 장르를 떠나 슬프고 힘든 혼돈의 감정이나 사랑스럽고 희망적인 느낌의 대부분은 기타가 준다고 믿는다. (물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플리의 베이스나 스매싱 펌킨스의 지미 챔벌린의 드럼은 정말 특별하다) 아래 두 곡은 기타 선율의 찰랑.. 2018.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