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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음반소개팅

즐거움 : 패닉 [1집 패닉]

by 보빈씨 2018. 6. 21.





즐거움



오늘도 내 친구는 바쁘다. 

낮에는 일, 밤에는 글을 쓰는 주경야필(!)의 삶에 여러 해를 들여 공들이고 있다. 

친구는 고된 스케줄을 비상한 성실함으로 지켜낸다. 그의 생활을 듣고 있노라면 김훈 작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이 절로 떠오른다. 

나 같은 팔자 좋은 백수는 이 일개미 친구가 ‘휴식과도 같은 밤 한 자락’을 기꺼이 잘라내어 고심 끝에 골라준 음악을 들으며 베짱이 짓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풍류를 아는 베짱이 행세도 음악을 공부하면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지랭이는 삼 년을 못 채운 서당개처럼 지식이 얄팍하다. ‘우리 노래 전시회’ 같은 전설의 음악가로 무장한 옴니버스 앨범을 접할 때면 가수의 이름은 알지만, 한 분 한 분의 업적은 잘 모르는 것을 자주 확인한다.  세대 차이 탓이라며 모면하는 내 귓속엔, 이광조 님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의 인트로 같은 익숙한 멜로디만 걸러져 들어오기 마련이다. 멜로디로 아는 만큼 들린다.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듣고 퀸의 'Love of My Life’를 떠올리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분명히 퀸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오! 베짱이는 호기심이 발동하면 개미처럼 움직인다. 금시초문의 곡에서 퀸을 느끼는 것, 이건 확실한 즐거움이다.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검색대에 올린다. 들국화의 곡이다. 퀸에서 들국화다. 

이번엔 들국화를 검색대에 올려본다. 비틀즈의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가 전인권과 최성원에 비유되며 아직도 편치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하다. 들국화 앨범 중 그저 2집을 틀어 놓아 본다. 이제 들국화에서 최성원이다. 

최성원 님을 검색대에 올린다. 그런데 그의 업적을 확인하는 순간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만다. 그는 패닉 1, 2집 프로듀싱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들국화 2집 ‘제발’에서 얄밉게 외친 랄랄라는 이적의 그것과 비슷했거늘. 그 동안 패닉과 이적을 들으며 퀸을 느껴오지 않았는가.  


퀸에서 들국화, 최성원, 패닉 그리고 다시 퀸이다. 

열매 전에는 꽃, 꽃 전에는 가지, 가지 전에는 줄기, 줄기 전에는 뿌리, 뿌리 전에는 씨앗, 씨앗 전에는 다시 열매…  

패닉의 첫 앨범을 틀어본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선형적 속도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꾸로 거꾸로 원을 그리는 순환의 마디에 진짜 즐거움을 발견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아름다운 재창조의 꿈임을. 


(2014.09.23)



  패닉 1집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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