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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19

이제 만날 수 있을까 : Smashing Pumpkins [Machina] 이제 만날 수 있을까 경은이는 내 1학년 때 친구다. 검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고등학생 같은 옷차림, 순박한 얼굴에는 환하고 담백한 웃음이 있는 내 대학 첫 친구였다. 10명 정도 무리지어 놀던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특히 경은이랑 나랑은 짝으로 앉아서 같이 웃고 떠들고 공부하고 놀았다. 수업듣고, 매점가고, 밥먹으러 가고, 도서관 가고, 학교 밑 술집가고~ 평범한 대학생 애들이었다. 한 번은 여름에 가야밀면을 먹으러 갔는데, 정말 맛있지? 하면서 ‘입에 달라붙는 맛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 표현을 처음 들어본 나는 “입에 달라붙는다구?” 하면서 같이 웃었다. 경은이는 동생도 있었다. 남자 동생이었는데, 경은이처럼 애가 순진하고 착한 얼굴이었다. 동생은 우리 친구들도 정말 잘 따르고, 자기 친구까지 데.. 2018. 6. 26.
즐거움 : 패닉 [1집 패닉] 즐거움 오늘도 내 친구는 바쁘다. 낮에는 일, 밤에는 글을 쓰는 주경야필(!)의 삶에 여러 해를 들여 공들이고 있다. 친구는 고된 스케줄을 비상한 성실함으로 지켜낸다. 그의 생활을 듣고 있노라면 김훈 작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이 절로 떠오른다. 나 같은 팔자 좋은 백수는 이 일개미 친구가 ‘휴식과도 같은 밤 한 자락’을 기꺼이 잘라내어 고심 끝에 골라준 음악을 들으며 베짱이 짓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풍류를 아는 베짱이 행세도 음악을 공부하면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지랭이는 삼 년을 못 채운 서당개처럼 지식이 얄팍하다. ‘우리 노래 전시회’ 같은 전설의 음악가로 무장한 옴니버스 앨범을 접할 때면 가수의 이름은 알지만, 한 분 한 분의 업적은 잘 모르는 것을 자주 확인한다. 세대 차.. 2018. 6. 21.
이 밤 : Neil Young [A Letter Home] 이 밤 매달리던 일이 끝났다. 과제 하나를 해결한 밤을 맞이하자. 이중 창을 꼭 닫아 달이 움직이는 소리도 막자. 아까 보던 책과 교제들은 잠시 치워놓자. 마음씨 고운 친구가 건넨 모과차의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코끝으로 느끼며 찾는 단 하나의 영혼. 음악, 그거면 된다. 나를 잊었냐며 예쁘게도 외치는 언니네 이발관도 좋고, 추억의 향기로 취하기 전에 술잔을 들라는 비트겐슈타인도 좋다. 설레고 싱그럽다면 비틀즈, 밤의 기운을 이길 수 없어 야릇해진다면 끈적한 비비킹에 매달리면 된다. 기분이 우울하다면 라디오헤드를, 더욱 깊이 우울해지고 싶다면 뮤가 적격이고, 반대로 그 기분을 떨쳐버리고 싶을 때는 마리아 칼라스가 좋다. 그리고 만일 비가 오고 있었다면 단연 포티쉐드나 메시브 어택을 선택했겠지. 하지만 나.. 2018. 6. 18.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 야광 토끼 [Seoulight]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항상 문제는 그 놈의 콘텐츠다. 백수를 자처한 나에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질문을 한다. “그래서 이제 뭐 할건데?” 나도 그게 궁금해서 고민 좀 해보려고 회사를 그만 뒀다니깐. 프로그램 만들 때도 그랬다. 그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게 중요한가? 계도적이고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게 중요한가? 난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거냐,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당최 하고 싶은 게 뭔가? 임유진이라는 음악가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검정 치마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다 “너도 니 음악 한 번 해보지?”라는 조휴일 군의 권유로 야광 토끼라는 밴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햐, 권유 한 방에 자기 앨범이라니! 심지어 음악도 좋다! 난 이런 사람이 부럽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신호.. 2018.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