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울 수 있기를
오늘 저녁 문자 하나를 받았다.
문자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없음 – 정PD님 잘 계시는지요 민망하긴 하지만 새로운 둥지에서 실력 있는 스텝들과 시작했습니다 연락 한번 주시면 찾아뵐게요 더위에 건강하세요’
아! 누구지. 이 분이 누구인지 이제 나는 모르겠다. 전화번호가 저장이 되어 있지 않다.
언뜻 보건대 나와 한 때 친분이 꽤 있었으나 최근에는 뜸했고 방송계 직군 중에서 연출 쪽일 것이며 이 PD분이 후배들을 데리고 프로덕션을 차려서 일감을 찾으러 다니는 중인 것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이 분은 내가 이제 방송을 하지 않는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건 작년 10월이다.
초등학교 친구와 광안리 해변을 걷다가 문득 가족과 친구, 내 터전을 두고 어디서 행복을 찾겠다고 이렇게 사는가 하는 생각이 번쩍 뇌리를 때렸다. 아무 것도 재지 않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기쁨을 넘어선 ‘환희’의 감정을 단 2번 느낀 적이 있는데 그 두 번째가 이사 와서 맞은 12월이다.
생각해보면 내 가슴 속은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권력, 바쁨, 시간, 경쟁, 돈 등…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은 짐으로 허덕이며 주인이 비워주기만을 기다린 모양이다.
새벽 거리를 밝히는 환경미화차량이 지나간 자리처럼 주인은 그 짐을 싹 비워줬다.
나는 문자를 보낸 주인공을 찾아보지 않았다. 버린 짐을 다시 뒤지기가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오늘 친구가 들려준 아름다운 곡의 강물이 내 가슴에 흘러 든다.
이제 짐이 아닌 ‘꼭 필요한 간소한 것’만이 가슴에 흐르기를.
늘 살아 있기를.
늘 깨어 있기를.
이 가슴 텅 비울 수 있기를.
(2014.06.30)
장필순 5집 (1997) 6집 (2002) 7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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