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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음반소개팅

'갈기'의 변천사 : 전기뱀장어 '야간비행'

by 즐거운 보빈씨 2018. 6. 1.





'갈기'의 변천사



어렸을 때 우리집 전축으로는 3가지 매체를 재생할 수 있었다. 

LP, CD, Tape. 


당시 CD가 플레이 되는 전축은 신식으로 쳐줬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우와, CD도 들어간다!”고 신기해하면서 부러워할 때 난 뒤에서 짐짓 으쓱해 하곤 했다. 

어차피 마땅히 틀 CD가 없던 상황이므로 모든 음반은 Tape아니면 LP였는데, 이 LP는 한번 갈라치면 아주 조심히 집중해야 했다. 


일단 지문이 묻으면 안되며 특히 판을 뒤집을 때 흠집이 나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비닐 케이스에 넣기 전에 자주 생기는 무시무시한 정전기를 잡기 위해 일단 클리너로 한 번 돌려 닦고 넣어야 한다. 

당시 나를 묘사하자면 온 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원하여 LP를 갈고 뒤집어 보겠다는 방바닥에서 부들부들 집중하는 초등 어린이.  

그렇지만 이런 나의 수고도 시간이 흘러 시내 레코드점에서 LP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면서 돌연 아쉬운 추억이 되어 버렸다.


CD는 갈기가 편했다. 

전축에서도 물론이거니와 이동용 CD플레이어까지 가세하니 음악듣기가 비할 수 없이 편리했다. 

CD장 앞에 서서 ‘오늘은 뭐 들을까…’ 하며 고민하는 아침이면 정말 행복했다. 

4CD나 6CD가 들어가는 공케이스 하나에 CD를 가득 채워 집을 나서면 겨울에 재어놓은 연탄마냥 걱정 없이 든든한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서로 자기 CD를 권하며 지식이랄 것도 없는 음악적 견해를 나누면서 즐거워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갈기가 더욱 편한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다. 

바로 MP3. 

냅스터만 있으면 구하지 못해서 발 동동 구르던 전 세계 음반들도, 돈 때문에 못 사던 음반들도, 심지어 CD에서 리핑하기 귀찮은 음반들까지도 얼마든지 다운받아 들을 수 있었다. 가히 혁신이었다. 이제는 아침마다 CD장에서 오늘 들을 CD고르기 같은 의식을 할 필요도 없었다. 전날 밤에 컴퓨터에서 다 다운받아 놓았기 때문이다. 


갈기가 편리한 매체의 등장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바로 벅스뮤직. 

실시간으로 음악을 재생해주는 이 스트리밍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면, 전날 밤 새벽까지 잠 못자고 냅스터를 뒤지며 거북이같은 MP3 다운로드 속도에 속 터지던 일마저도 또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실물 음반 매체 없이 음원이라는 형태의 앨범 발매가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10개도 넘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가 음반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음악을 듣기 위해 무언가를 ‘갈았’다. 

무엇을 갈았냐고? 바로 휴대폰 배터리다. 

나의 멜론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전기뱀장어의 ‘야간비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즐겁게 흥얼거리는 중에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딱 끊기는 거다. 

그래서 나는 예전 회사 앞 버스정류장에서 CD를 갈았듯, 거리 택시 승강장에 앉아 휴대폰 배터리를 갈았다.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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