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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음반소개팅

잘 알지도 못하면서 :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by 보빈씨 2018. 6. 11.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오랜 친구에 대해서 혹은 우리의 자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내 애인이고 내가 낳은 자식이라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초라해 마지않다.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는 애인의 기분을 이리저리 살피고, 아이 방에 몰래 들어가 일기장에 손대고 마는 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도 그랬다. 핑크 플로이드! 

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위대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잘 몰랐다. 영국팀이던가, 미국팀이었던가? 멤버가 몇이더라? 

웃긴 것은 너무나 유명한 전설이다보니 마치 비틀즈나 엘비스 프레슬리마냥 그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고작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의 장르 정도였다. 

그래서 갑작스레 이제 와서 “그런데 핑크 플로이드는 지금도 활동합니까?”라고 남들에게 물을 수가 없는 거다. 다른 팀은 몰라도 핑크 플로이드에 대해서만큼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록음악 역사의 조상님을 모른다는 것은 문중 장남이 할아버지 존함 모르는 것과 같은 거다.


하지만 최근 나는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할아버지 존함을 물어보기로 했다. 일단 2장의 앨범을 들어보자.

그 유명한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부터 시작한다. 

음… 확실히 옛날 앨범이라 레벨이 작네. 요새 음반들은 전부 레벨을 키워가지고 귀가 아파. 리마스터링도 또 키워놓은 거 아냐 이거? 이 앨범 리마스터링은 분명히 있겠지? 

그리고 다음 [The Wall]. 음… 그래 이 유명한 곡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 그래, 교육은 중요하지. 우리나라는 교육이 진짜 문제야. 학생들 가둬놓고 뭐 하자는 거야? 이번에 뽑힌 교육감들 어쩌나 보자. 그러고 보니 투표율은 왜 그렇게 낮았던 거야? 난 새벽부터 일어나서 투표장에 가서…'  (음악 듣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사실 전설의 명반이고 유명한 고전인데 나는 아무 감흥이 들지가 않았다. 뭔가 기괴하고 뭔가 긴 것만 반복된다는 느낌 외에는 말이다. 

엄청난 실망감이 몰려왔다. 내 귀가 이상한가? 핑크 플로이드가 원래 이랬나? 혹시 사람들도 앞에서 전설이라고 떠받들고 뒤로는 쉬쉬하는 건가? 

서너 번 반복해서 들었는데도 실망감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나의 친구가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 앨범을 추천해 준다고 했다. 

뭐 또 핑크 플로이드라고! 난 아직 내상에서 회복도 못했다구.

하지만 하늘은 필요할 때 스승을 내려준다고 했다. 기대도 않고 재생한 첫 곡 ‘Shine On You Crazy Diamond’. 바로 그거였다.


이 곡을 시작으로 마음 속의 의구심은 말끔히 치료되었다. 이 앨범은 한 마디로 ‘좋았다’.  

뭔가 유려하고 

뭔가 길게 

전체가 한 곡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멜로디가 아름답고 무섭지 않을 만큼만 어둡고 거부감 들지 않을 만큼만 전위적이었다.


이 시대에 가능했던 기술과 영감을 최대로 쓴 것 같았다.

마치 그만하자는 듯 곡을 뚝 잘라버리는 듯한 의도(‘Have a Cigar’)라든가 제목처럼 곡 시작에 들리는 기계 공장 효과음(‘Welcome to the Machine’)이나 아마 당시 새로운 아이디어였을 라디오 채널 변경 효과음(‘Wish You Were Here’) 같은 것 말이다.  이래서 프로그레시브(진보적인) 록이겠지.

한 곡 한 곡 조밀한 구성과 악기들로 꽉꽉 다 채우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현하고 싶은 그림을 크게 크게 그린 다음 이음새만 투명하게 붙여 시야가 넓었다. 아마 이 그림은 후대로 갈수록 조밀해지게 되었을 것이다. 러시에서 드림시어터에서 툴이 될 때까지.


나는 아직도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확실하게 아는 것은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 앨범은 좋았다, 명반이 맞겠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의 데뷔 년도, 역사, 디스코그래피, 이 앨범의 주제 같은 것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순식간에 알아낼 수 있다. 


아! 엄청 실망했던 저 두 장의 앨범이야말로 진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판단했던 건 아닌지.


(2014.07.06)